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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오늘의 우리만화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 "헤매기-연결망" 조익상 만화평론가
2024.12.06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 김성희, 한사람연구소
김성희 작가의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은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특별한 만화다. 첫째, 기획된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 둘째, 비인간 사물을 비롯한 이질적인 것들과의 연결과 연합이 섬세하게 조명된다는 점. 셋째, 만화 속 삶이 보통의 삶에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는 점. 하나씩 천천히 짚어 보자.
우선 이 만화는 작가의 경험과 그것을 담은 이야기가 한 덩어리가 되도록 기획되었다. 물론 자전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은 많다. 에세이, 수필, 생활툰 혹은 자전적 소설이 그 예다. 하지만 어떤 변화를 계획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만화에 담기로 하고 출발한 예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한 드물다. 만화에서 이런 기획을 긴 호흡으로 단행본 한 권 분량까지 뽑아낸 사례가 있었던가? 체르노빌로 덜컥 떠난 만화가의 이야기 <체르노빌의 봄>(엠마뉘엘 르파주, 길찾기, 2013)이 그나마 떠오르지만, 한국 만화에서는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만화에서 이런 방식이 어려운 까닭은 사실 단순하다. 예상 가능한 기획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기획이라 이름을 붙이더라도 모험이고 헤매기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성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언제 끝날지, 끝나기는 할지조차 불투명한 일이고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니 오춘기를 맞은 김성희 작가 같은 이가 아니라면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아무리 김성희 작가라지만, (혹은 김성희 작가여서 더더욱) 경험이 곧바로 만화가 될 리도 만무하다. 작가의 계획은 이랬다. 1) 캠핑카를 구입한다. 2) 캠핑카를 ‘움직이는 작업실’로 직접 개조한다. 3) 그 여정을 만화로 만든다. 세 단계 중 가장 간단한 1) 조차도 만만치 않다. 캠핑카가 생긴 대신 집이 사라졌다. 취득세를 내야 하고 대형 면허를 따야 하고 (그것도 없이 일단 차를 샀다) 숙식을 캠핑카에서 해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 만화 작업을 지속할 공간도 없다. 2) 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2) 의 과정은 지난하다. 사실 그 과정이 270쪽짜리 만화 중 200쪽을 넘게 차지한다. 작가가 기술을 익히며 몸을 만들고 여러 도움을 얻어 캠핑카를 작업실로 개조해 나가는 그 모든 일이 너무나 흥미진진하지만, 그것을 만화로 그리는 과정은 실시간일 수 없었다. 그릴 대상인 경험이 겪는 것만으로도 숨 가빴으므로. 그러다 어느 정도 작업이 가능한 모양이 갖춰진 시점, 놀랍게도 작가는 생각한다. 어차피 만화 원고료만으로는 살 수 없는 현실이니 두 가지 결론이 있다. “만화를 포기하는 것”, “빌어먹을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버리는 것” 생각이 왜 이렇게 흐르냐면 “만화를 하지 않으니 막 재미있어서”이다. 그러다가도 생각한다. “작업하고 싶다.” “이렇게 좋은데 이걸 안 담고 뭐 하는 거지?”
이제 3)이 시작되려나 했더니 작가는 다시 다른 ‘작업’으로 빠져든다. 실은 ‘게르’라 이름 붙인 이동 작업실을 만들며 도움을 과도하게 많이 받았다. 이제는 그 작업을 “내가 해내고 싶어서” 작가는 작업실을 철거하고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3)을 거쳤기에 이 만화를 우리가 읽을 수 있지만, 작가의 경험은 이만큼 상당한 시차와 우여곡절 끝에 만화가 되었다. 만화를 포기할 뻔한 경험까지도 통과하여, 이 만화는 우리에게 왔다. 기획된 자전적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좌충우돌을 겪은 이야기가 아닐까. 이 작품에 고유한 특별한 헤매기다.
이제 두 번째,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과 연합에 대해 논할 차례다. 잠시 우회해야 할 것은 브뤼노 라투르라는 철학자의 사유다. 만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만화가가 만화를 그린다.”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투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화는 만화가와 종이, 펜, 그 외 여러 가지 이종적인 행위자들이 협업한 결과물이라고. 요즘 같은 디지털 만화의 제작은 태블릿, 스타일러스 펜, 스케치업 프로그램 등과 인간 만화가의 협업이다. 그뿐이겠는가, 전력망과 전기, 발전소, 인터넷과 해저 광케이블까지, 이 모든 것이 함께 일해 웹툰 한 편이 만들어지고 독자에게 전달된다.
요컨대 하나의 행위는 이종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연합(동맹)을 통해 일어난다. 행위하는 것은 한 사람 혹은 여러 인간뿐만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까지 복잡하게 뒤섞인 연결망(네트워크)이다. 연결망 속 동맹을 위해 각각의 행위자들은 서로 조율하고 협상한다. 잘 연결되기 전까지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잘 연결된 후로도 고장이나 실수로, 혹은 연결망이라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방해가 일어나 행위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데 협업한 노트북도 수 차례 블루스크린을 띄웠다. 계엄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글쓰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결망은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다. 연결망의 구축과 유지는 섬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라고 줄여 부른다)에 기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은 곳곳에서 행위자-연결망을 세세히 펼쳐 보여준다. 캠핑카 게르를 예로 들어 접근해 보자. 게르는 기본적으로 캠핑카다. 차이면서 임시 숙소다. 김성희 작가는 그 용도에 더불어 이동 작업실의 용도를 더하고자 한다. 요즘 유행하는 다이소 물건 의외의 활용법처럼 쉽게 용도를 변경할 수도 있겠지만, 차는 좀 더 복잡하다. 차량 종류마다 다르나 자동차는 대략 1만 개 내외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어느 하나가 고장나면 작동이 멈추거나 사용이 불편해진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은 원리도 잘 모르는 부품과 요소도 많다. 이를테면 내연기관 자동차에도 배터리가 있고, 인버터, 컨트롤러 등이 있다. 차량 내 전등이나 에어컨도 전기를 쓰고, 캠핑카라면 그 안에서 전기 콘센트에 노트북이나 그 외 전자기기도 연결해 쓰게 된다. 개조에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는 분해하고 교체하고 용도를 변경해 나가며, 알아나간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는 법을 배웠다. 119페이지에 그려진 ‘버스 내부로 올라가는 전등 포함 모든 전열 선들’, ‘인버터’, ‘태양열 배터리’, ‘임시전원 공급장치’ 등 전기함 속 여러 물건들이 캠핑카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듯이. “고려하고 알아야 할 것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연결망 속 행위자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다. 지금껏 ‘하나’로 인식하던 대상이 ‘여러 가지 것들’의 뭉치였음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런 장면들이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 속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김성희 작가가 캠핑카 ‘게르’와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배움이었다. 충분히 시간을 보내며, 그것의 전체와 세부를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둘은 연합해 로드 만화를 준비해 냈다. 그 연합에도 다른 여러 이종적인 것들의 역할이 잔뜩 더해졌다. K 같은 사람들, 핸드 그라인더 같은 도구들. 용접과 같은 기술들, 운전면허와 같은 제도들. 게다가 언뜻 방해 같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경험이었을 코로나, 차를 달리게 하고 머물게 한 도로와 도시들. 이 모든 다른 것들이 만화 속에 등장하며 각각의 행위자성을 눈에 띄게 보여준다. 연결망이 구축되고 유지되는 (혹은 실패하는) 과정 또한 섬세하게 다뤄졌다.
나는 이런 만화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만화가 하는 일의 지평이 <헤매기의 피곤과 즐거움>과 함께 넓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에 고유한 연결망 드러내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특별함은 이 만화가 독자의 삶에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가령 ‘헤매기-연결망’은 그 자체로 내게 질문이었다. 감탄하며 나는 내 주변을 바라볼 새 시선을 얻었다. 이를테면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내 삶에서 행위하고 있었구나, 하는 답. 새로 발견한 여러 가지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험. 이것이 내 질문이 나를 이끈 경로였다면, 다른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질문들이 다채로운 경로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니 질문은 내가 아니라 각각의 독자들이 따로 짚을 일이다. 그나마 이 글로 연결된 독자들에겐 이런 힌트 하나는 줄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질문을 따라가며 헤매다 보면, 삶에 대한 전혀 낯선 매뉴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힌트.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