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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오늘의 우리만화 <세화, 가는 길> "내 부엌에서 세화사의 공양을 만나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2024.11.22
내 부엌에서 세화사의 공양을 만나다
<세화, 가는 길>, 한혜연, 카카오웹툰
이미지 거북이북스 제공
절의 종무소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 겨우 두 시간. 집에서 가까운 동네절이었고 그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쌀이나 초 값을 받는 일이었지만 제안을 받고 할까말까 망설이던 시간은 길었다. 안면이 있는 다른 절의 주지스님께 의논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절은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에요.” 쉽지 않을 거라는 경고인 한편 그만큼 사람공부, 마음공부가 될 거라는 격려이기도 했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 먹는 밥은 어떤 맛일까. [세화, 가는 길]은 흑백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망연자실한 이에게 세상이 총천연색일 리 없다. 함께 살던 애인이 자살하고, 그 가족에게 너 때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세화.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는데 애인의 반혼제(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들일 때 지내는 제사)날 스님께 얼떨결에 받은 약과가 달다. 맛을 느끼는 혀부터 현실의 색깔은 천천히 돌아오지만, 그 약과를 나눠먹을 이는 이미 없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세화사]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세화사에 드나들거나 그곳에 사는 이 중에 사연이 없는 이는 없다. 스웨덴 출신의 승려 비욘 나티코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압도적인 고통을 끌어안고 세화사를 찾은 세화에게 귀 기울이며 시작된 이야기는 세화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이 품고 있는 고통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음식이다. 삼시세끼, 단 한번도 건너뛸 수 없는 끼니가 그들의 눈앞에 있다. 아무리 슬프고 절망에 빠졌어도 모두 함께 먹을 한 끼니의 밥은 지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세화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공양간이다. 그곳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공보살, 그 곁에서 서툴지만 진지하게 음식을 배우는 동주스님, 그리고 그곳을 오가며 온갖 식재료를 다듬고 가끔은 공보살님의 빈 자리를 메꾸는 강오처사, 희로, 최보살, 보미, 김처사, 유보살…. 그들이 만드는 밥상이다.
절을 드나들다보면 알게 된다. 스님들은 절대 중생을 굶기지 않는다. 원체 부처님께 바쳐지는 과일과 떡이 넘치기도 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배는 든든히 채워야 함을 아시는 까닭일 게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절에서 밥을 먹기 전에 손을 모으며 외우는 “오관게”는 우리가 이 밥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그렇지만 그저 ‘육신을 지탱하는 약’이라기에는 이들의 밥상이 너무나 맛있어 보인다. 고기와 오신채를 뺀, 욕심을 덜어낸 메뉴임에도 매 회 댓글란에는 먹고 싶다는, 군침 돈다는 후기가 빠지지 않는다. 작가의 묘사가 훌륭해서이기도 하지만 도시에 사는 이들이 잊고 있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과, 그리고 서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이들이 메뉴를 궁리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그 계절에 뒷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물이나 신도들이 보내준 식재료다. 신도들은 주로 자신이 농사지은 것이나 제철음식을 보내주니, 식탁만 보아도 계절을 알 수 있다. 그때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 놓치면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요원하지만 다행히도 계절은 계속해서 돌아온다. 지난 봄과 올 봄이 같지는 않겠지만, 봄이 오면 ‘봄동’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또한 절의 음식은 모두의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어떤 일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같이 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치러야 하는데, 공양간의 밥값은 돈이 아니다. 동지팥죽을 먹으려면 모두 함께 새알심을 빚어야 하고, 겨울이 오면 만두를 빚어야 하고, 누군가는 감자를 깎고 누군가는 면을 삶아야 한다. 몇 끼 굶은 듯한 퍼석한 얼굴로 공양간에 처음 발을 들인 이들은 어느 날인가부터 면 삶는, 야채 다듬는 달인이 된다.
작가는 음식에서 쉽게 교훈을 끌어내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미를 가진 음식이 있다. 정월대보름에 먹는 ‘해원떡’처럼. 인절미는 콩가루에 동글동글 굴려놓으면 한입에 먹기 좋지만, 큰 덩어리일때는 작게 썰어내는 게 쉽지 않다. 칼질을 하려면 칼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해원떡이다. “맺힌 게 있더라도 서운함을 풀고 더불어 살아가라는 의미로 대보름날 서로 끌어당겨 떼어먹는 인절미를 먹었다고 합니다.”해원떡 한번 나눠먹었다고 오랜 갈등이 저절로 풀릴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도 몇십 해에 걸쳐 오래 나눠먹으면 정이 붙어버리고 만다. 공보살과 유보살처럼.
이 작품을 보다보면 세화사에 가고 싶어진다. 가서 추운날에는 뜨끈한 된장수제비를, 갱시기죽을, 더운 날에는 찬 국수를 먹고 싶다. 그 공양간의 음식을 한그릇 먹으면 모든 고통이 눈녹듯 사라질 것 같다. 그런데 갈 수 없다. 현실에 없는 절이니까.
그 대신, 작가는 세화사의 밥상을 집안에서 맛보기를 권한다. 단순히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큰 충격을 받고 제주도에 틀어박힌 강오처사를 위해 동주스님과 김처사는 세화사의 식재료를 싸들고 비행기를 탄다. 낯선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싸온 식재료와 오일장에서 구한 재료로 한끼의 밥을 차린다. 그 밥상이 강오처사를 구한다.
이제 오기 힘들 거라며 세화가 “지난 겨울엔 세화사에 오고 싶을 때마다 공양간 풍경을 떠올리며 배추를 부쳐먹었습니다.”라고 하자 공보살은 “그렇다면 이제 다가올 여름은 열무로 세화사를 대신하십시오”라며 열무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가르쳐준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할 때, 우리는 세화사의 음식과 내가 먹는 음식이 뿌리에서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지만, 함께 음식을 나눠먹으며 치유되던 그들을 떠올리면 결국 이 음식이 약이 될 것을 알게 된다.
[세화, 가는 길]을 “사찰음식웹툰”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생물학을 전공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구별하기 어려운 식재료들을 낱낱이 펼쳐놓는데, 그 그림을 짚어가다 한 그릇 김 피어오르는 밥을 마주하면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음식도 달라보인다. 우리의 음식이 어떻게 우리를 잇는지 알게 되면 우리의 부엌도 공양간이 될 것이다. “세화사”여도 좋고, 각자의 이름을 붙인 절이어도 좋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어느 절의 공양간.
박사(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