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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순정’ 기획전 전문가 리뷰6-<문흥미 작가>-만화평론가 박인하

2023.01.16

 

자기파괴적 욕망의 마이너리티

 

 

문흥미는 1991 잡지 «하이센스» 이것이 사랑입니까?›으로 데뷔했다. 1990년대는 1988 «르네상스» 창간 이후 여성독자들의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새로운 여성만화(순정만화) 잡지가 창간되던 시대였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13종의 여성만화 잡지가 창간되었는데, 문흥미는 여러 잡지를 오가며 주로 단편을 발표했다. 문흥미의 단편은 주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경험이나 캐릭터에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주로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이런 단편의 경향성은 1997 대원출판사( 대원씨아이) 청소년 타겟 여성만화잡지 «이슈» 성인 타겟 여성만화잡지 «화이트»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 THIS› 연재하며 특유의 작품 세계로 정착된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 가난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제목에서 보듯 하위계층을 전면에 내세운 대가족 코미디다. 양귀순, 귀리, 귀하, 귀찬 4 남매와 부모님의 갈등과 사랑을 그려나갔는데, 가난한 가족의 좌충우돌이 매력적인 만화가 양귀리와 박휘의 러브라인이 강조되었다.

 

THIS 당시 가장 대중적인 담배인 디스 통해 여러 이야기를 연작으로 엮은 작품으로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에서 한발 현실로 나갔다. 단란주점에 다니는 10 청소년, 담배를 몰래 피는 여고생과 장애인,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회사원에게 추근덕거리는 상사, 일본인 사업가의 현지처, 부서의 일을 책임지고 정리해고 당하는 직장인, 가난한 판자집의 가족, 해고당해 시골에 내려간 가족, 혼자 사는 여성, 동성애자, 한물간 아이돌 등이 등장한다. 당대의 어느 만화보다 현실적으로 평범한 대중들, 그리고 만화에 등장해 적이 없는 마이너리티의 문제를 직시했지만 작은 위안과 희망의 싹은 남겨놓았다.[1] 문흥미는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 THIS› 편의 작품을 연재하며 성장하는 여성 성인 독자를 겨냥한 한국판 레이디스 코믹 가능성은 물론 장르의 틀을 벗어난 리얼리즘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98 여자만화라는 새로운 컨셉을 앞세운 서울문화사의 만화잡지 «나인» ‹in 서울 연재하며 로맨스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 대가족 코미디, ‹THIS› 리얼리즘 단편이라면 ‹in 서울 로맨스다. ‹in 서울 전작이 보여준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을 자기파괴적인 인물로 확장한다. ‹in 서울 로맨스의 기본인 낭만적 유토피아의 주인공들[2]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파괴적인 욕망을 지닌 개인이 등장한다.

 

잡지 «나인» 연재된 서울문화사에서 단행본 2권으로 묶인 ‹in 서울 1권에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 구성이다. 1 1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탈학교 청소년 장현민을 주인공으로 그의 혈연적 가족과 비혈연적 가족과의 관계를 다룬다. 가출해 소주방 삐끼를 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는 장현민.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화만 내는 권위적인 아버지, 경제활동을 책임지고 아버지를 탓하면서 바람을 피는 어머니, 대학에 입학한 독립해 사는 누나는 요정에서 일하고 부자의 스폰을 받고 있다. 학교를 떠나 거리에서 만난 윤해신과 함춘호도 사연이 있다. 윤해신은  미스코리아 출신 손윤정과 거성그룹 윤신철 회장의 숨겨놓은 딸로 일부러 삐뚤어진 삶을 산다. 함춘호는 중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하다 고등학교에서 가해자를 만나 커터칼로 상해를 입히고 학교를 뛰쳐 나와 약에 기대어 사는 캐릭터다. 장현민과 윤해신, 함춘호는 아슬아슬하게 서로 얽혀있는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히면서도 함께 한다. 장현민은 유사가족을 지키려 하는데, 윤해신은 의도적으로 관계를 파괴하려 한다. 희망이야.”라는 장현민의 말에, 윤해신은 사랑이면 사랑이고 나발이면 나발이지, 희망 같은 세상에 없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장현민은 굴하지 않고 아니, 희망이야. 그리구 희망을 지킬 거야.”라고 말한다. 결국 예상한 것처럼 결말은 유사가족은 붕괴되고 만다. 전작들과 비교해 어두워졌고, 작품 안에서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2 SCENE 주인공 이윤민과 안승수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윤민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동경하던 사촌언니 정수지의 남자친구 안승수를 만난다. 레스토랑에서 손가락에 소스가 뭍자 대뜸 승수가 손가락을 잡아 입에 넣는다. 수지는 수험생을 자극하면 어떡하냐 농담으로 넘겼지만, 윤민은 손가락이 몹시 뜨거웠었다 기억한다. 윤민이 대학에 입학하고 수지는 승수와 계약동거를 하다 헤어졌고, 자신이 진짜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는다. 승수는 돈을 받고 상대방과 동거를 주는 남성인데, 길어도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수지가 가족들이 사는 캐나다로 떠나고, 화가 윤민은 승수를 찾아가 자기와 계약하자고 한다.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깨어난 윤민에게 승수가 찾아온다. 고민하던 윤민은 한달 동안 승수와 동거하기로 하고 동안 철저히 괴롭혀 주고 말겠다고 결심한다. 기묘한 동거에서 승수는 윤민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청소를 한다. “승수가 후로 아주 좋은 식사와 아주 깨끗한 주거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윤민은 승수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지만 좋은 관계로 전환되지 못한다. 약속한 한달을 며칠 남기고 캐나다에 살던 수지가 갑자기 나타나며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in 서울에는 타나토스적 자기 파괴의 욕망을 지닌 주인공들이 스토리텔링의 주요 동력으로 등장한다. 동시대 이정애, 이빈, 김기혜 등의 작품에도 자기 파괴의 욕망을 지닌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자기파괴적인 욕망이 섹스 나타나지는 않았다. 윤해신(1) 안승수(2) 당대에 보기 힘들었던 자기파괴적인 욕망을 섹스 구체화하는 캐릭터다. 이들은 자기 선택으로 섹스 자기파괴의 출구로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in 서울 마이너리티는 당대 한국만화에서 보기 드문 중독의 마이너리티도 보여준다. 1화에서 춘호는 약에 의존하는 캐릭터도 2화에서 수지는 승수와의 관계를 잊지 못한다. 이런 젊은세대의 탈주하는 마이너리티는 1990년대 3 호황과 현실 사회주의 붕괴로 인한 거대담론이 무너진 자리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1989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 번역되며 당대 한국 문학에 확산된 경향이다.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1990)›, 장석주의 낯선 별에서의 청춘›(1991),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 등의 작품은 모두 탈주하는 젊은세대의 마이너리티를 그렸다.

 

X세대라 불린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들이 대표하는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가득한 세상에 문흥미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으로 소외받은 존재들의 마이너리티를 작품에 담아냈다. 그래서 ‹in 서울 1990년대 만화 목록 중에서 기억되어야할 작품이다. (박인하)

 


 

 



 

 

[1]   1 내게 어울리는 행운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설정(아들이 발견한 돈이 어머니가 잃어버린 돈이라는 잃어나기 힘든 작의적인 상황설정) 등장하지만 2화부터는 식목일에서는 어설픈 상황설정은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 일상을 보여주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가출해 술집에 다니는 청소년들의 일상이 그대로 아무런 가감없이 등장하고, 우리는 그들의 슬픔에 전염되게 된다. 명당자리, 나의 언어, 곰돌이네, 크리스마스의 트리, , 여사님등의 작품에서는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우게 되고, 다정한 친구, 노처녀 같은 작품에서는 사회와 개인의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폐업정리, 1997 12 31, 좋은 나무, 정육점 김씨, 붕어빵같은 사람들등의 작품은 희망을 발견할 있다. 작위적인 상황설정 없이 사람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THIS에서는 때문에 날카로운 비판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희망을 더욱 많이 발견할 있다.(박인하,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 살림, 2000, p.269-270.

 

 

 

[2] 빅토리아 시대에 발명된 낭만적 유토피아의 주인공들은 오늘날의 로맨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조들이다.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이 부자남이나 알파남과의 연애와 결혼에 성공하는 신데렐라의 원조라면, 제인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의 원조다. 다시가 알파남의 원조라면, 로페스처는 괴팍하지만 속은 여린 나쁜 남자의 원조다. 물론 무수한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지만, 여성들에 의해 발명된 낭만적 유토피아는 현재진행형이다. 가부장적 결혼의 모순이 존재되는 , 낭만적 유토피아로 보상받으려는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이정옥 로맨스라는 환상, 문학과 지성사, 2022,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