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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자료] 오늘의 우리만화 전문가 리뷰5 <도롱이> 만화평론가 조익상

2021.11.12

<도롱이>라는 세계 인식

<도롱이> (네이버 웹툰)

 

웹툰의 인식적 가치

    만화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논할 것인가? 여러 접근이 있겠지만,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논한 인식적, 미학적, 정서적 가치1)를 적용해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듯싶다. 만화 작품이 세계를 인식하는 배움, 만화 장르로서의 미학적 새로움이나 정밀함, 희로애락 같은 정서적 반응을 독자에게 제공하는가. 같은 글에서 신형철은 2012년 무렵의 소설에서 정서적·미학적 가치에 비해 인식적 가치의 힘이 간과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표했는데, 나는 지금의 만화 특히 웹툰 작품들에서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도 2021년은 사이사 작가의 <도롱이>가 있어 다행이었다. 인식적 가치가 희소한 시절, <도롱이>에서는 세 가치를 모두 체험할 수 있었다. <도롱이>에는 잘 짜인 서사는 물론 세로 스크롤 연출과 색채 대비의 극적 활용 같은 미학적 가치도,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공감 가도록 표현하며 이룩하는 정서적 가치도 풍성하다. 이러한 특장점이 규합해 만들어내는 효과는 인식적 가치에 힘을 더한다. 올해 <도롱이>에 대해 쓴 다른 글2)에서는 주로 정서적, 미학적 가치를 다루었기에, 이 글에서는 <도롱이>의 인식적 가치를 중점적으로 짚어 보려 한다.

 

용두 혹은 이무기 대가리

    “지금 딴 이무기 대가리 줘.”

    1화의 마지막 대사다. 주인공 삼복의 이 말 앞뒤로는 이무기 대가리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독자가 그것을 이무기 대가리로 인지하는 일은 삼복의 말에서 비롯한다. <도롱이>의 이무기 대가리는 우리가 흔히 용 머리라고 생각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사슴뿔마냥 갈라졌지만 뭉툭한 뿔, 사자의 그것 같은 갈기,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한 눈까지. ‘상식적으로 용두임이 분명한그 머리를 두고 삼복은 이무기 대가리라 말한다.

    이어서 2, 삼복은 자신의 상반신만 한 이무기 머리를 들고 산길을 걷는다. 그 길에서 삼복은 자연산 이무기’(도롱이)를 발견하고 잽싸게 포획한다. “잡았다 자연산 이무기!” 이어지는 대사, “오빠한테 엄청 자랑해야지.” 여기저기 뻗친 데다 목덜미도 못 가릴 짧은 머리를 한, 앞섶이 거의 열린 한복 저고리에 바지를 입은, ‘상식적으로 소년임이 분명한외양을 지닌 삼복이었다. 하지만 <도롱이>는 삼복을 열한 살 소녀로 소개한다. 그제야 1화를 다시 뒤져보면 단 한 번도 성별을 문자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각의 연유는 결국 그렇게 본 이에게 있다. 초반 세계관에서 소년만화 장르를 짐작하고, 주인공의 외양과 행동거지가 남자아이 같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그렇더라도 이무기 대가리를 용두로 소녀를 소년으로 오인한 이유를 작가에게서 찾는 시도가 무망하지는 않다. 그것이 작가의 유도에 의한 것이었다면 의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그 속내는 자기 눈을 의심하라그리고 눈을 씻고 보라는 데 있다. 이야기 속 무엇도 지금껏 의 관성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백지로부터 다시 판단하라는 표지다. 대충 보아서는 정체도 진가도 알기 어려운 작품이니 정신 차리고 보라고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도롱이>는 이처럼 자신만만하고 퀴어(queer)한 친절을 초반부에 베풀며 독자에게 특정한 자세를 넌지시 요청한다. 그리곤 스스로의 오인을 기꺼이 인정한 독자, 혹은 이미 편견 없는 눈으로 볼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들에게 이야기의 몸통과 함께 진면목을 드러낸다.

 

 

용미 그리고 끝내 용을 본 독자

    <도롱이>의 서사를 정말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이무기 백정의 딸 삼복이 이무기 도롱이의 승천을 돕는다. 짧은 요약에서도 드러나지만, 둘의 첫 관계 설정은 적대적이다. 도롱이의 승천을 돕는 일은 삼복으로서는 가문을 배신하는 일이다. 두 주역에 더해 삼복의 가문에 맹렬한 적의를 지닌 검은 용 강철까지, 세 캐릭터의 부딪힘이 <도롱이>라는 용의 몸통을 이룬다. 허나 이 용의 진면목은 실제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니, 우리는 곧바로 꼬리로 간다.

    “용두용미최종 화 베스트댓글 중 하나다. 1화의 이무기 대가리만 기억하는 이에게 이 댓글은 이상하다. 분명 이무기 대가리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무기가 용이 되는 이야기를 모두 본 독자에게 저 말은 참이다.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굳이 설명하기도 구차하지만, ‘용두용미는 용두사미를 뒤튼 말이다. 초반만 대단하고 후반 완성도는 떨어지는 어떤 작품들과 달리, <도롱이>의 만듦새는 일관되게 대단하다. 그래서 <도롱이>용두용미. 또 하나의 의미는 수미상관이다. <도롱이>의 모든 요소는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고, 이를 도드라지게 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처음과 끝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수미상관의 면모를 따져보자.

    1화에서 <도롱이>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비춘다. “이무기가 천살을 먹으면 하늘로 승천해 용이 된다는 이야기를 한 아이가 설렌 표정으로 전한다. 이야기를 듣던 열한 살 삼복은 이렇게 말한다. “그짓부렁” “그건(이무기는) 그냥 짐승이라고최종 화에서 이제는 서른한 살이 된 삼복이 비슷한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을 보며 열한 살의 자신을 떠올린다. 무지하기에 악했던, 역사도 진실도 몰랐던, 그래서 이무기를 그저 고깃덩이로 여겼던 자신의 옛 상태, 부족했던 인식을 떠올린다.

    그때다. “용은 확실히 있어!” 어딘지 열한 살 삼복과 닮은 아이의 입에서 확신에 찬 말이 튀어나온다. 아이는 머리 모양은 약간 더 단정하지만 열한 살 삼복과 유사한 형태의 옷을 입었다. <도롱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독자라면 이 아이를 섣불리 남자아이라 단정하지 않는다. 여자아이라 거꾸로 속단하지도 않는다. 삼복과 세계가, 용에 대한 아이들의 말이 작품 속에서 바뀌었듯, 작품을 보는 독자의 인식도 바뀌었다. <도롱이>의 수미상관은 이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야기 속 변화에 조응하여 이야기 밖 독자도 변화한 것이 머리와 꼬리를 다시 짚을 때 드러나는 것이다.

 

 


 

 

인식의 충격 이후

    나는 <도롱이>를 보지 않은 이들이 부럽다. 이 놀라운 작품을 처음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롱이>를 본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를 숨기느라 애쓴 것도 그 즐거움을 직접 체험하도록 초대하고 싶어서다. 즐거움과 함께 독자가 경험할 인식의 변화 역시 초대의 이유다. 말을 아꼈지만 선악, 정의, 복수, 사과, 용서 등의 추상어가 얼마나 복잡한 무게를 지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들이 <도롱이>에는 가득하다. 이것도 이 걸출한 웹툰이 품은 인식적 가치다. 그렇다면 과연 인식적 가치는 무엇을 하는가를 마지막으로 묻자.

    <도롱이>가 함양한 인식적 가치로부터 세계를 겹쳐 읽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입장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 세계의 위기, 가해자와 희생자 등, <도롱이> 속에는 현실 속 여러 사안을 떠올릴 장면이 빼곡하다. 이렇게 판타지와 현실이라는 두 텍스트를 겹쳐 읽는 일, 즉 알레고리가 발생한다. n명의 독자가 지닌 n개의 고민거리와 새로운 인식이 <도롱이>의 이야기와 조응하며 수많은 알레고리가 피어난다. 그리고 개개인의 선택 또한 궁리된다.

    “누구 혹은 무엇을 더 돕겠다는 우리의 선택과 함께 세상이 만들어지는 중이다.”3) 

    이슬아 작가가 기후위기를 배경으로 한 말을 조금만 바꾸면 <도롱이>의 다른 요약이 탄생한다. “이무기를 더 돕겠다는 삼복의 선택과 함께 세상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잘린 이무기 대가리를 들고 다니던, 용이 거짓부렁이라던 삼복이 자신의 가문보다 이무기를 더 돕는 선택을 내렸다. 변화를, 지금까지의 관성과 전혀 다른 선택을 상상하게 하는 인식의 충격. <도롱이>는 그것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충격을 무겁게 받아 안은 독자들은 각자가 고민하는 오늘 가운데 세상을 만드는 선택을 매만질 것이다. 이것이 <도롱이>오늘의 우리만화인 이유다.

 

 


 

각주

1)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166.

2) 조익상, “만화로 본 세상: <도롱이>”, 『주간경향』 1427, 2021. 5. 17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105071119111&code=116; “가해와 피해의 연쇄 아래에서: <도롱이>와 『진격의 거인』의 길”, 『지금, 만화』 10, 2021. 6.

3) 이슬아, “우리 부디 서로를 돕자”, 『경향신문』, 2021.11.1.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1010300095